사진을 한지 이제 고작 1년.(참고로 이 글을 쓰던 작년 시점에선 그랬다.ㅋㅋ)
이런 생초보도 없다. 취미라곤 하지만 출사 나갈 엄두도 못 내고 그저 간혹 카메라 들고 다니며 고작 일상이나 기록하는 수준이니 생초보 딱지 아직도 달고 다니는 수준이다. 하지만 사진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이 모두 겪는 불치병인 ‘장비병’ 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수준이다. 세상 어떤 의사도 이 병을 고칠 수 없다. 오로지 완치의 길은 그 놈을 가지고 마는 것. 그것만이 최선의 치료이다.
2005년 6월과 7월에는 CONTAX(콘탁스)라는 브랜드에 필이 꼽혔다. T3라는 작은 똑딱이 카메라가 뿜어내던 짙은 파랑과 빨강의 충격에서 헤어나기도 전에 C/Y마운트의 SLR에 빠지고 말았다. 하지만 이번에 걸린 병은 기존처럼 카메라 바디에 걸린 병이라기보다는 C/Y마운트용 칼짜이즈 렌즈라는 초강력 울트라 바이러스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한 진단인 것 같다.
콘탁스는 독일에서 시작된 유명한 카메라/광학 메이커이자 브랜드이다.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항복한 후 러시아가 침을 뚝뚝 흘렸다는 콘탁스. 결국 연합군과의 협상에서 러시아는 콘탁스의 생산라인과 기술자들의 일부를 러시아로 데려가 광학의 새로운 산업을 일으키려 했으나 결국 짝뚱 콘탁스만 양산한 끝에 항복하고 말았다는 그 브랜드. 결국 핵심 기술자들은 서독(정확히 말하면 연합군 쪽으로)으로 넘어와 다시 부활되었던 전설 속의 브랜드. 그러나 일본 기업에게 넘어와 1975년 RTS라는 명기로 다시 태어나게 된 그 콘탁스. 올해 일본 기업으로 넘어온 지 30주년을 마지막으로 생산을 중단한 콘탁스. 최신의 카메라들이 AF로 넘어가는데도 늘 MF를 고집해온 장인정신의 콘탁스. 그 바디의 완성도는 셔터를 눌러보는 순간 자연스럽게 손가락 끝을 통해 느낄 수가 있다.
이런 콘탁스의 장인정신 덕분인지 아니면 브랜드의 가치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콘탁스 바디는 정말 만만치 않게 비싸다. 신품은 볼 것도 없고 10년 이상 된 중고도 보관만 잘했다면 40만원 이상하는 것도 수두룩하고 더구나 희소성의 가치 때문인지 중고 가격도 다른 카메라 메이커에 비해 잘 떨어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칼짜이즈 렌즈에 필이 꼽힌 이상 써보지 않고는 못 버티는 게 이 병 아닌가? 그래서 인터넷의 사방팔방을 기웃거린 끝에 발견한 것이 바로 야시카(YASHICA)였다. 이 야시카라는 친구 알고 보니 콘탁스의 동생뻘쯤 되는 녀석이었다. 냉철하게 이야기 한다면 야시카가 콘탁스를 카피한 것이긴 하다. 일본인들의 독일 광학산업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실제로 이런 아류 브랜드들을 만들어내게 했던 것. 하여간 귀족 콘탁스를 모방한 알프레도 야시카. 하지만 참 신통방통한 녀석이기도 하다.
야시카는 헝그리 브랜드이다. 예전 우리 아버님 세대에 잘나가던 사람들은 니콘이나 캐논을 잘나가고 싶어 하시던 분들은 대부분 이 야시카 브랜드의 카메라를 장만했던 것이 사실. 당연히 니콘이나 캐논에 비해 저렴하니 헝그리 브랜드라고 해야 할 듯. 하지만 그 능력도 헝그리 한 것은 아니니 뒤에 이어지는 글을 끝까지 봐주셨으면 한다.
야시카는 머피의 법칙이다. 카메라는 흔한데 막상 사려고 하면 잘 보이지 않는 묘한 녀석이기 때문이다. 물론 만들어진지 이미 수십 년이 지났기에 폐기되거나 수명을 다한 녀석들이 대부분일 수도 있지만 기계식 카메라들은 보기에 사망한 것처럼 보여도 잘만 추스르면 언제든지 촬영이 가능한 청춘으로 환생할 수 있는 묘한 녀석이다.
일단 제일 먼저 야시카에 대한 정보를 여기저기서 수집했다. 제일 많은 정보를 얻은 곳은 ‘로커클럽’이었고 싸이월드에 있는 야시카 동아리에서도 많은 정보를 얻을 수가 있었다. 그래서 결국 선택한 기종은 조리개우선모드를 지원하면서 플라스틱 바디로 무척 가벼워 서브카메라로 적당하다는 FX-D Quartz였다.
목표물이 정해졌으니 그 다음부터는 로커클럽의 장터에서 매복에 들어가는 일. 이 매복은 정말 피를 말리는 작전이다. 수시로 드나들며 상황을 체크해야 최고의 녀석을 최저의 가격으로 구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저녁 광화문 이순신 동상 옆에서 은은한 쇼윈도의 불빛을 받으며 내 손에 들려 있는 이 녀석을 내려 보는 감격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28밀리 DSB 렌즈라는 바디만큼이나 헝그리한 렌즈를 포함해 10만원이라는 거금을 투자해 병을 고쳤으니 이 어찌 기쁘지 아니하겠는가?
막상 녀석과 조우하고 난 후 첫인상은 참 가볍다, 그리고 참 낡았다는 것이었다. 1979년 6월이 이 모델의 출시일이니 뭐 다들 연세들이 드실 만큼 드셨지 않겠는가? 피부(카메라는 둘러쌓고 있는 가죽레자)는 들뜨고 온몸은 다 까져서 흉터가 난무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전 주인은 한 차례 피부이식을 했는지 비교적 피부는 깔끔했다.(물론 그 이식한 자국은 남아 있지만.. ^^) 찬찬히 살펴보는데 그렇게 문제가 있어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녀석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다. 이 문제점은 이 모델에서 보이는 공통된 문제인데 카메라 밑면에 있는 배터리 캡이 황당한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주인말로는 잘된다니.. 뭐..그리고 다 그렇다니..뭐.. 태어날 때 가지고 있는 장애이니 어쩌겠나... 그래서 그냥 입양을 했다.
Yashica FX-D Quartz의 스펙
크기(D×W×H): 50mm×135mm×86mm
무게 : 460g
셔터 스피드: 1/1000, B, 싱크로:1/100(sec)
파인더: 시야율 95%, 배율 0.86배
필름 감도 설정:ISO 25~1600(물론 손으로 설정 요망)
발매 당시 판매가격: 61,500엔
발매일: 1979년 6월
처음 구입했을 무렵에는 칼짜이즈 렌즈가 없었다. 하지만 병 고치려면 어쩔 수 있나? 또 며칠간의 장터 매복을 통해 50mm f1.4 T스타 렌즈를 구했다. 그리고 그 녀석을 야시카에 물리는 순간 얼마나 기분이 업되던지.. ^^
야시카 FX-D와 칼짜이즈 50mm f1.4의 조합은 수동기 니콘의 최대 플래그십이라는 F3와 함께 내가 가지고 있던 모든 니콘 장비를 장터로 몰아내는 계기가 되었다. 가지고 있으면 뭐하나 들고 다니며 찍는 건 이 녀석 뿐인데.. ^^
사실 야시카 FX-D Quartz는 니콘의 뽀대나는 F3에 비해 작고 가볍고 보잘 것 없는 카메라이다. 세상 카메라 중에는 잘나고 비싼 카메라도 많지만 우리네 사람처럼 보잘 것은 없지만 그래도 참 알차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더 아름다운 사람들도 많지 않은가? 반드시 비싼 차 타고 다닌다고 좋은 사람이 아닌 것처럼 반드시 비싼 카메라를 써야 좋은 사진이 나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난 야시카를 통해 배우게 되었다.
사람들은 나의 행보를 보며 마치 일기예보를 하듯 예고를 했다. 콘탁스로 가기 위한 전초전이라는 게 중론. 하지만 당분간은 구태여 콘탁스 바디를 구입할 이유가 없는 것 같다. 누군가 아주 저렴하게 준다면 몰라도 같은 사진을 찍는데 구태여 두 배 가까이 하는 카메라를 구입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야시카로 지금까지 몇 롤을 찍으며 느꼈던 점들은 아래에 정리를 했다. 결국 좋은 점과 아쉬운 점이 전부일 것이다.
FX-D를 쓰며 행복했던 것들
1) C/Y마운트 렌즈를 활용할 수 있는 최적의 최저가 바디라는 것
2) 내가 가장 선호하는 조리개우선모드를 지원한다는 것
3) 벌브도 지원하고, 필름 감도의 지원도 위아래도 넉넉하다는 것
4) 파인더 안에 빨간 점으로 표시되는 노출표시도 이쁘다는 것
5) 무엇보다 좋은 사진을 만들어 준다는 것
FX-D를 쓰며 아쉬웠던 것들
1) 손대면 톡하고 떠질 것 같은 플라스틱 바디라는 것
2) 뷰파인더가 다소 어둡다는 것
3) 배터리캡이 이상하게 망가진다는 것
4) 단종 된 모델이기에 부품 및 악세사리 구입이 어렵다는 것
5) 미러 쇼크에 잘하면 애떨어진다는 것
사실 셔터의 철커덕하는 미러쇼크는 나에겐 기쁨 중 하나였다. 콘탁스의 사각하는 셔터가 좋다고 하시는 분도 많지만 난 개인적으로 셔터는 묵직하게 떨어지는 게 좋아서 사실 야시카가 더 예뻐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변덕이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지만.. ^^ 야시카... 그냥 버리기 쉽지는 않을 듯 합니다. ^^
하지만, ㅋㅋ 아쉽게도 이 녀석 06년 초에 입양보냈다.. ^^ CY마운트와 과감히 이별을 고한 것.. 아쉽다.. 언젠가 넉넉한(?) 렌즈의 여유가 생긴다면 다시 만나고 싶은 녀석이다... 이 녀석.. 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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