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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0일(목) Tokyo Wasedacho, 하루 종일 비
눈을 뜨니 도쿄의 와세다 대학 인근에 있는 친구 집 안방.
우리 가족 모두는 피곤에 지쳐 늦잠을 잤다. 아주 단잠이었지만 창밖에는 비가 계속 내리고 있었다. 오전 내내 친구의 집에서 이리저리 뒹굴거리다 도무지 좀이 쑤셔 못 견뎌 오랜만에 만나 회포를 풀고 있는 짠이엄마와 친구의 아내를 남기고 나는 카메라 하나 달랑 메고 와세다 대학을 찾아 나섰다.
작고 복잡한 캠퍼스 하지만 알 수 없는 카리스마
마치 교회 같은 강당의 모습
캠퍼스는 국내의 유명 대학들처럼 넓거나 웅장한 규모는 아니었지만 아주 깔끔하고 정갈한 느낌을 주었다. 학생들은 강의와 강의를 옮겨 다니느라 바쁘게 걸어 다니는 모습이 무척 생경했다. 우리 대학 캠퍼스처럼 여유로움은 별로 없었다.
그 와중에 재미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아쉽게도 한 순간에 일어나 카메라에는 담지 못했지만 말로도 충분히 설명이 가능하다. 서쪽 캠퍼스 중앙쯤에 와세다 대학 설립자의 동상이 서 있다. 그런데 왠 학생인지 아님 젊은 교수인지 하는 사람이 갑자기 그 동상 앞에서 큰 소리로 ‘아리가토고자이마스’라고 외치며 90도 각도의 절을 올리는 것이 아닌가? 난 그 소리에 무척 놀라 돌아다 보니 상황은 순식간에 종료되고 없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더 황당한 것은 그 상황 이후. 우리네 같으면 보통 그런 상황이 벌어지고 나며 그 친구에 대해 이상한 눈길을 주며 사람들 모두가 웅성거릴 만도 한데 어허… 이 친구들 도무지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그 상황에 반응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좀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일본의 개인화 성향이 타인에게 간섭하지 않는 성향으로 강해졌다는 말에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하지만 그런 해프닝은 결코 와세다에서 풍겨 나오는 이상 야릇한 카리스마를 가릴 수 없었던 것 같다. 묘한 매력이 있는 학교 와세다.
(* 비가 계속 내려 좋은 사진을 많이 찍지 못한 것이 제일 아쉽다.)
도쿄 도심에서 즐기는 정원 관광 – 고이시가와 고락쿠엔 가든
비가 계속 내리고 도무지 그칠 여지가 없었다. 인터넷을 뒤져 일기예보를 체크하니 더욱 절망적이다. 우리가 돌아가기로 한 토요일까지도 비가 온다는 예보. ㅜ.ㅜ
일단 신나게 놀고 있는 아이들을 남겨두고 짠이엄마와 집을 나섰다. 목표는 단 하나 ‘고이시가와 고라쿠엔 가든’을 찾아 나선 것. 정원 천국 일본에서 좋은 정원 몇군데 보지 못하고 같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일까… 결국 인터넷을 뒤져보니 이곳이 그나마 괜찮다고 생각되어 길을 나선 것이었다.
후문이 입구로 사용되고 정문은 공사중으로 폐쇄되어 있다. 사진은 후문입구
비교적 주변 지하철과 길에서 이정표가 잘 되어 있어 찾아가기는 무척 쉬웠다. 바로 도쿄돔과 붙어 있는 이 정원은 비가 와서 그런지 더욱 고즈넉하고 운치 있어 보였다. 입장료는 어른이 300엔. 아무래도 특별사적이며 특별명승이라서 잘 정돈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그리 크거나 넓지는 않았지만 도쿄 시내에 마치 원시림을 숨겨놓은 듯한 느낌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계절마다 다른 꽃들이 피어나고 폭포가 있고, 호수가 펼쳐지고 더구나 촉촉하게 내리는 비는 나무로부터 피어나는 자연의 향기와 어우러져 너무나 좋은 느낌을 만들어냈다.
약 1시간 30분 정도를 천천히 걸었더니 정원 전체를 잘 돌아볼 수 있었다. 정원을 도는 와중에 마주치는 일본인들은 아주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일본의 경우 모르는 사람들 끼리는 인사를 잘 하지 않는게 보편적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산에서 등산 중에 사람들을 만나면 가벼운 인사를 나누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고락쿠엔 정원의 가이드맵
일본 한복판인 도쿄라는 거대 도시 속의 자연림 같은 정원에서 생면부지의 일본인이 반갑다고 말을 걸어온다… 거기도 여기도 사람 사는 건 다 같은가 보다. ^^
1629년에 조성된 정원이니 무려 400년이 흐른 셈이다. 그러나 정원의 진정한 매력은 새것보다는 헌 것 정확히 말해 오래될수록 더욱 푸르고 더욱 많은 생명을 담아낼 수 있는 진정한 자연의 공기(空器)가 된다.
400년 된 정원은 빌딩도 숲으로 품고 있다
정원으로 들어가는 입구
여덟개의 나무로 만든 다리가 운치 있다
숲 너머 어렴풋이 보이는 도쿄돔
요사이 우리들은 아파트와 콘크리트 문화에 젖어서 진정한 정원의 필요성을 잘 못 느낀다. 최근 들어 웰빙 바람을 타고 빌딩에서 실내조경을 하기 시작했고 옥상에 숲을 조성하거나 베란다 정원이 유행하고는 있지만 이 모든 흉내가 진정 400년 된 정원에 비할 바가 되겠는가? 최근에 개방된 국내의 창경궁 후원도 얼마나 좋을까?
물과 흙과 풀과 나무가 어우러지는 숲의 향기는 며칠간 강행군을 해온 우리들의 몸을 재충전해주는 듯 했다.
처음 해본 우노(UNO) 잼있다!
우노카드는 대형서점 혹은 인터넷을 통해 쉽게 구할 수 있다
오후 늦게까지도 비는 계속 내렸다. 정원을 관람하는 동안에는 큰 나무들이 숲을 이루며 비를 간간히 막아주어 멋진 산책을 할 수 있었는데 비만 내리니 짠이를 데리고 다녀야 하는 상황에서 어려운 점이 많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짠이엄마와 나만 시내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다가 다시 친구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와보니 짠이와 그 집 아들과 딸 이렇게 세 명이 아주 재미나게 놀고 있었다. 무슨 카드 놀이를 하고 있기에 요즘 유행하는 아이들의 만화 캐릭터 카드인 줄 알고 있었더니 모양이 그게 아니다. 유심히 보니 우리가 어린 시절 트럼프로 흔히 하던 ‘원카드’라는 놀이와 유사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우노가 결국 하나라는 뜻.. ^^)
나도 모르게 아이들과 어울려 놀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아주 잘 놀았다. 아이들과 인디안밥도 하고 ^^ 느즈막히 돌아온 친구와 함께 발렌타인 17년 한잔 하고 잠을 청했다.
내일은 우리 짠이와 디즈니랜드에 가기로 한 날인데 과연 비가 그칠지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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