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유럽 자동차의 역사를 대표하는 사브를 만났습니다. 지명도도 없고, 유명 자동차 브랜드에 밀려 판매도 시원치 않기에 GM에서도 마이너 브랜드가 되었던 불운의 사브. 한 번 떨어진 판매율은 좀처럼 쉽게 회복되지 않았고, 내가 사브를 만났을 때는 최악의 상황이었습니다. 2007년 총 판매대수가 185대였으니 한숨부터 나오더군요.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 빠진 사브를 어떻게 포장하는 게 좋을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보니 사브는 전투기 엔진의 심장을 달고 태어난 대단한 녀석이더군요. 제일 먼저 준비한 것은 차 자체의 낯 간지러운 자랑질이 아닌 사브가 이어온 정통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노력의 결과 2008년에는 최근 3년 중 가장 많은 275대 판매..ㅜ.ㅜ)
하늘을 나는 꿈을 자동차에 투영한 브랜드 사브(SAAB)는 1937년 Svenska Aeroplan AktieBolaget라는 스웨덴 항공기 회사에 의해 탄생했습니다. 불과(?) 7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자동차 기술면에서는 혁신에 혁신을 거듭한 기념비적인 브랜드죠. 미국과 일본 그리고 독일 자동차의 약진으로 점점 북유럽 자동차가 힘을 잃기 시작했고, 사브는 미국의 GM에게 넘어갔습니다. 그 후 하늘을 품으며 창공을 날고 싶던 사브는 꿈을 이루지 못하고 GM의 추락과 함께 지금 또 다른 주인인 스웨덴의 ‘코니세그'에게 매각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사브 재해석 콘텐츠를 만들면서 현재 판매하는 사브를 대부분 타보았습니다. 거창하게 자동차 전문가 수준이 아닌, 처음 산 차를 10년 넘게 타는 보통의 자가 운전자 관점에서 경험한 사브는 정말 좋은 차였습니다. 가장 처음 타 본 차는 사브의 노란색 9-3 컨버터블. 소프트탑의 전통적인 컨버터블이었는데 첫 시동을 켜는 순간 마치 내가 전투기에 앉아 있는 느낌이 들 정도로 흥분되더군요. 부릉하고 시동이 걸리면서 리드미컬하게 울려 퍼지는 엔진음이 소음 없기로 유명한 일본차에 비해 매력적이더군요. 인테리어는 조금 투박하지만 차의 성능은 기막혔습니다. 특히 비행기 엔진에 사용되는 터보 기능은 일정 속도 이상에서 출력을 극대화해 마치 총알처럼 차를 튀어나가게 합니다.
사브의 백미는 스페셜 한정판 모델이었던 사브 터보 X였습니다. 검은색 차체에 힘이 넘치던 이 녀석을 타고 찾아간 2008년 겨울의 우포늪. 스포츠카와 세단을 결합시킨 느낌의 터보 X. 안개와 함께 달려가던 터보 X는 안정감과 속도감 모두에서 만점을 주고 싶을 만큼 만족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사브의 마케팅 활동은 중단되었고, 이제는 사브를 위한 콘텐츠를 만들 수 없는 상황이 되었죠.
그렇게 아쉬운 이별을 했던 사브가 GM과도 이별합니다. 스웨덴에 있는 사브 공장도 1달 이상 휴업 중이라고 하더군요. 한국에서도 수입된 차를 다 팔고 나면 더 수입하지는 않을 듯합니다. 사브와 불과 몇 달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의미가 깊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애정이 생기고 나니 예전에는 거리에서 눈 씻고 봐도 안보이던 사브가 이제 눈에 쏙쏙 들어오더군요. 운전자의 안전을 위해 안전벨트를 처음으로 도입하고, 비행기 시트 같은 몸에 감기는 시트를 도입하는 등 늘 자동차의 혁신을 꿈꾼 사브. 전 언제나 당신의 팬입니다. ^^ 좋은 주인 다시 만나 한 번 더 도약하는 사브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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