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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어버이날은 어느 때보다 마음이 무겁다. 홀로 남은 아버지의 건강이 불과 두 달 전에 비해 급격히 나빠지셨기 때문이다. 어머니를 16년 동안 간병하시고 얻은 전립선암이 전이는 되지 않았지만, 약이 독하다 보니 몸이 많이 상하신 것 같다. 이제는 기력을 잃으셔서 밥도 제대로 못 드실 정도가 되었다. 누가 없으면 거의 드시질 않으니 걱정이다. 그렇다고 특별히 병원에 입원하실 정도는 아니지만, 이제는 언제 어디서나 도움이 필요하시게 되었다.
특히, 점점 하체 힘이 약해지시는 것과 정신이 오락가락 하시는 문제가 제일 심각하다. 최근 드신 약이 마약성 진통제인데 그것을 드시고부터는 집에 어머니가 와 계신다고 하고, 어느 날 문득 교회에 다녀오는 차에서 엄마 언제 오냐고 물어보시고, 이내 돌아가신 것을 아시고는 눈물 짓는 등 5월은 참 잔인하게 시작되었다. 진료 이후 약을 교체해 지금은 조금 좋아지셨지만,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신 것은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고 계시다. 이렇게 아들로서 아버지를 지켜보는 모습은 왠지 안타깝다. 요즘에는 아버지에게 못한 것만 떠오르니 더욱 그 느낌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회사 직원들이 아버지에게 보내준 꽃바구니, 생각지도 못했는데 너무 고마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도 아버지의 입장이다. 아내와 아들은 12시간 비행해야 갈 수 있는 곳에 있지만, 아버지의 의무와 아들에 대한 관심은 거리가 필요 없을 만큼 강한 것도 부정할 수 없다. 내가 열 두살 무렵 아버지가 이런 마음이 아니셨을까? 요즘 아들은 영화에 푹 빠져 있다. 지난번에 주고 온 디카의 동영상 기능을 이용해 유튜브에 올릴 영화를 제작 중이라고 지난달부터 이것저것 보내라는 게 많다. 출연진은 레고 인형이지만 친구들과 함께 만들고 있다니 대견스럽기도 하다. 내가 지금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옛날의 아버지가 나에게 해주셨던 그것처럼 꿈을 키워가는 것을 옆에서 묵묵히 봐주고 도와주는 일인 것 같다.
대학 1학년. 영화를 찍겠다고 16밀리 카메라를 당시 200만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구입했었다. 지금으로부터 25년 전인데 당시 아버지는 잠깐 고민해보시고 그 거금을 선뜻 주셨다. 철없던 나는 아버지의 결심이 얼마나 큰 뜻이었는지 잘 몰랐다. 당시에는 그저 감사할 뿐이었는데 내가 아버지가 되고 보니 그것은 그냥 감사할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 카메라에는 아버지라는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던 것을 아주 나중에서야 조금 깨닫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역시 아들은 철이 없고, 아버지는 위대한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위대한 아버지이면서 한편으로는 철없는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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