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추척 60분에서 요양병원을 소재로 삼았다고 한다. 블로그스피어에서도 이 프로에 대한 후기와 이야기들이 난무하고 있는데, 대부분 고발 내용에 대한 비난과 의료 시스템에 대한 문제 제기가 많다. 하지만, 난 이 모든 글을 접할 때마다 마음 한 구석이 묵직하게 불편해짐을 느낀다. 추적 60분에 의하면 난 어머님을 현대판 고려장 시킨 불효자이기 때문이다. ㅜ.ㅜ
지난 서울올림픽의 개막식은 내 인생에서 지울 수 없는 큰 상처를 남겼다. 1988년 9월 17일… 집에서 샤워를 하시던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지셨다. 당시 세브란스 응급실에서는 어머니를 받지 않았다. 베드가 없다는 변명이었지만 내가 볼때는 가망이 없으니 돌아가라는 의미로 들렸다. 결국 서울 시내에서 받아 준 곳은 영등포구청 뒤에 있던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중급 병원이었다. 그곳 중환자실에서 어머니는 죽음이라는 마귀와 사투를 벌이셨고 근 한 달만에 모든 의사들이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는 기적이 일어나 병실로 귀환하셨다. 당시 어머니는 한 쪽 뇌를 크게 다치셨는데도 그 병원을 3개월만에 걸어서 퇴원하셨다. 보이는 시야가 좁아진 불편함을 제외하고는 거의 정상으로 돌아오신 것.
서울대병원의 유명한 박사님에게 퇴원하자마자 진료를 받으시러 갔는데 당시 그 선생님이 어머니의 머리 사진을 보시고는 도대체 이런 사람이 어떻게 말을 하고 걸어다니냐고 이건 기적이라고 하셨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그러나 그런 기적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5년후 1993년 3월 22일… 어머니는 두번째로 쓰러지셨다. 난 결혼식을 홀로 준비했고 그렇게 혼배성사를 마치고 찾아간 병원에 계신 어머니는 우리를 못알아보시고 그저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셨다. 이번에도 기적은 이어져 많이 호전이 되신 후 퇴원을 하셨다. 물론 두번째 퇴원 이후로는 말씀도 못하시고 몸도 자유롭지 못하셨다.
이런 와중에 몇 번 더 응급실을 왔다갔다 하시더니 결국 2002년 이후에는 상황이 급격히 나빠졌다. 그 십여년을 아버지와 나 그리고 짠이엄마가 온전히 돌봐드렸다. 물론 90%는 아버지의 몫이셨다. 어머니보다 10살 연상이시고 사제지간이셨던 아버지는 끝까지 어머니를 돌보셨다. 집에는 병원 베드가 있었고 산소호흡기만 없지 거의 반 의사가 되신 아버지.
결국, 어머니는 2002년 겨울을 넘기지 못하시고 중환자실로 들어가셨다. 폐렴… 병원에서는 마지막을 준비하라고 통보를 해왔다. 그러나 이번 위기도 기적처럼 넘기신 이후 더 이상 아무런 반응을 못하시는 상황이 되었다. 난 선택해야했다. 당시 아버지도 칠순을 훌쩍 넘기셨다. 도저히 아버지가 어머니를 더 이상 돌보신다는 것이 힘들다고 판단해 당시에는 드물던 요양병원을 찾았다. 이때 비인가 시설부터 큰 병원까지 다 돌아봤다. 솔직히 집을 개조해 중풍이나 치매 노인을 모시는 곳도 많았다. 그리고 아주 고급 시설로 대형 병원 수준의 전문병원도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적절한 비용. 당시 한 달에 150만 원하는 전문병원을 선택했다. 그게 내가 어머니께 해드릴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으며 모든 가족이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고 지금도 확신한다. 그리고 1년 후 비교적 따뜻하던 3월의 어느 휴일. 어머니가 위독하시다는 연락을 받고 달려가던 중 운명하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렇게 어머니를 보냈다. 지금도 당시를 회상하면서 병원으로 모신 것이 잘한건지에 대해 고민을 해본다. 중요한 것은 어머니도 어머니지만 중풍이나 치매 환자들의 경우 그 가족 구성원 모두도 배려해야한다. 나는 솔직히 연로하신 아버지를 위해 어머니를 병원으로 모셨다. 그리고 그 방법이 우리 가족 모두에게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늘 회상의 끝은 후회가 없다는게 결론이다.
갑자기 방송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고보니 조금 난감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생각해봤다. 내가 진짜 어머니를 고려장했던걸까?…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난 단 한번도 어머니를 거기에 버렸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매주 한번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을 다녀오던 그 1년도 나에게는 소중한 어머니와의 추억이었다고 생각한다. 조언하건데 만약 나같은 처지가 된다면 병원은 꼭 직접 가서 눈으로 확인하고 주변의 평판까지 참고하기 바란다. 그렇게 모시고 왔다갔다 하면서 운전 중에 아버지에게 이런 말을 한 기억이 난다.
이게 다… 어머니와의 이별 연습인 모양이네요.. 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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