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insky 2016


2005년 4월 양양산불은 사람과 육지를 할퀴며 지나갔다. 당시 가장 큰 피해를 본 곳은 1300년의 역사를 지닌 천년고찰 낙산사로 아름다웠던 자연경관과 건물들이 소실되고 말았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불은 불교적으로 새로운 탄생을 의미한다. 기독교가 불이 최후의 심판인 것에 비해 불교는 불로 인해 지금의 내가 사라지고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난다는 윤회적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불이 낙산사를 집어삼켰다. 그리고 2011년 4월 낙산사를 찾았고 그곳에서 나는 작은 감동을 받았다. 낙산사는 불로 인해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낙산사를 올라가는 길은 몇 갈래가 있는 것 같다. 내가 선택한 것은 낙산 해수욕장 입구에 있는 커다란 주차장에서 유스호스텔 옆길을 따라 올라가는 길. 주변이 아직 공사 중으로 어수선했지만, 그래도 이제는 많이 정리된 느낌이다. 계단에 올라서니 홍예문이 나왔다. 1467년(세조 13년) 세조가 낙산사에 행차한 것을 기념해 사찰 입구에 세운 무지개 모양의 돌문이 바로 홍예문이다. 돌로 만들어진 아치(문) 위에는 누각이 있는데 이것은 1963년에 세워진 것으로 지난 양양산불로 소실되었으나 최근 복원되었다. 홍예문을 들어서니 넓은 경내가 나온다. 다른 절과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보통의 절은 산에 둘러싸인 모습인데 반해 낙산사는 탁 트인 느낌이었다.

낙산사 홍예문

넓고 단아한 낙산사 경내

부처님 오신날이 다가오니 연등으로 예쁘게 장식되어 있다.

낙산사 경내는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연등으로 예쁘게 장식되어 있었다. 낙산사 동종도 화마에 소실되었으나 지금은 복원이 끝난 상태. 설악해수욕장에서도 보이던 해수관음상을 보기 위해 발길을 재촉했다. 비교적 이정표가 잘되어 있어 넓은 경내지만 쉽게 해수관음상을 찾을 수 있었다. 불자들이 해수관음상 앞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바다를 바라보는 해수관음상의 얼굴에는 희비가 없는 무심의 느낌이 강했다. 결국 그 무심히 번뇌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삶을 되돌아보도록 하는 힘이 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낙산사 동종

낙산사 사천왕상

처음보니 아가들은 간혹 놀라기도 한다.

해를 맞이하는 누각이라는 뜻의 빈일루

해수관음상으로 가는 길목

하늘과 누각의 대비가 절묘하다.

저멀리 해수관음상이 보인다

해수관음상에서 밑으로 내려가면 보타전이 나오는데 이곳과 그 앞은 이제 공사가 한창이었다. 아마도 내가 생각할 때는 이곳이 마지막 남은 복원 공사가 아닐까 싶다. 곳곳에는 화마의 기억처럼 검게 그을린 나무 밑둥이 그대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굉음을 내는 건설기계로부터 멀어지니 눈앞에는 의상대가 들어왔다. 의상대는 천년고찰 낙산사보다 역사는 길지 않다. 낙산사를 창건한 의상대사를 기념하기 위해 1925년에 만든 정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미는 남다르다. 의상대는 의상대사가 낙산사를 지을 당시 머무르며 참선을 하던 곳이다. 6각형의 단아한 정자이며 바다에 비해 높지 않아 바다와 맞닿은 느낌이 정겹다. 의상대를 돌아 나오면 무료국수공양실이 있으나 아쉽게도 맛을 보지 못했다.

해수관음상이 바라보는 바다

해수관음상이 놓인 방향으로 작은 암자가 있다

보타전 앞은 아직도 공사중

양양산불의 증거

의상대에서 바라본 바다

의상대사가 참선을 했다는 곳에 세워진 의상대

이렇게 낙산사를 가볍게 훌쩍 둘어보았다. 천 년을 넘어 의연하게 자리를 지켜온 곳을 불과 한, 두 시간 만에 수박 겉핥기로 지나가는 게 아쉽지만 그래도 화마를 넘어 많은 사람의 노력으로 새롭게 일어서는 모습을 확인하니 한편으로는 마음이 든든했다. 오늘은 부처님 오신 날이다. 종교의 벽을 넘어 불자에게도 축하를 전하며 성불하길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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